거절의 미학
2025.04.13
w0nder

거절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출근길 지하철 출구에서 건네받는 전단지를 거절하는 사소한 순간부터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내리는 결정까지, 우리는 매일 선택과 거절의 순간을 마주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부탁을 받게 마련이다. 처음 만난 사이나 특별한 연이 없는 관계에서는 "죄송합니다만, 어렵겠네요"라는 짧은 말로 거절이 끝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어려운 것은 이미 깊은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 주고받은 것이 많은 사이에서의 거절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거절이 어려운 사람이다.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대부분 "그럼요, 제가 해볼게요"라고 응답한다. 이 짧은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일시적인 안도감과 묘한 죄책감이 함께 찾아온다.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내 진정한 마음을 숨겼다는 죄책감이 뒤섞여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거절해야 할 상황에서도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왜 또 그랬어?" 집에 돌아와 홀로 남겨졌을 때 자책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나 다음에도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마치 '거절'이라는 단어가 내 어휘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처럼.
머리로는 즉시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가슴은 그렇지 않다. 특히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거나 관계가 소중하다면 더욱 그렇다. "내가 거절하면 우리 관계가 어색해질까?", "그동안 그가 나를 도와준 것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거절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상대방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부담감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경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이다. 지금까지 나는 전자에 압도되어 후자를 무시해왔다. 그 결과는 번아웃, 후회, 그리고 분노로 이어졌다. 상대방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 결국 나 자신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최근에 거절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이고,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거절하지 못한 채 밤마다 잠들기 전 이 상황에 대한 생각으로 뒤척인다.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심장은 빠르게 뛴다.
때로는 새벽 세 시에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거절했을 때의 상황을 끝없이 상상한다. 대부분 "넌 배은망덕한 놈이야"라는 비난, 우정의 파괴, 그리고 함께 가기로 한 행사에서의 어색한 순간들과 같은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이 흘러간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듯한 느낌이 든다. 목이 메이고, 식욕이 사라진다. 어떻게 거절의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상대방의 기분을 덜 상하게 할지 끝없이 고민하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은 필연적으로 거절을 포함한다. 거절하는 방법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마음속에는 이미 거절의 문장이 완성되어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연습했다. "정말 미안해. 너와 함께하면 좋겠지만, 지금은 어려워." 단순한 문장인데도 목소리가 떨렸다. 거절하는 나 자신이 미워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원망스러워서 생기는 감정들이다. 무언가를 거절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간성과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까지 불러일으키는 복잡한 행위처럼 느껴진다.
결국 거절은 내가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제다. 오늘도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고, 내일도 어쩌면 같은 실패를 반복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고 있다. 영원히 '예스'만 말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그 무거운 '아니오'를 꺼내야만 한다는 것을.
거절의 미학이란 아마도 완벽한 거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어설프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의 경계를 지키려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밤에도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내일의 거절을 연습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고통스러운 연습이 조금은 덜 아프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