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살고 싶으세요
"어디에 살고 싶으세요?" 커뮤니티에서 문득 그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이를 먹고, 어느덧 정착을 '해버린' 지금 이 질문을 다시 듣게 되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미 답을 내린 줄 알았는데, 다시 묻는 순간 삶 전체가 흔들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정착했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물리적으로 한 곳에 머문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마음이 멈췄다는 뜻일까요.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창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요즘, 그 질문은 더 이상 '지리적 위치'를 고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 살아야 하는가'는 점점 더 제 삶의 방식과 연결된 질문이 되었죠. 그리고 결국은 '자유'라는 단어에 다다랐습니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대답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금 사는 곳에 계속 살려고요." 그건 정답이 아니라, 회피에 가까운 말이었습니다. 돌아와 혼자 다시 묻고 또 묻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곰곰이 파고들다 보니, '자유'라는 단어에 계속 닿게 됩니다. 단순히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하고, 그 결과를 내가 책임지는 그런 자유. 그런 삶을 살아야 비로소 나를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저는 아직 그 자유를 완전히 누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생각한다'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너무나 많은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거든요. 타인의 기준, 사회의 시선, 가족의 기대… 아직 꽤 많은 끈들이 저를 붙잡고 있었죠. 내 생각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 모든 끈들이 살며시 당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너무 모호해졌습니다. 때로는 진짜 내 생각이 뭔지, 나는 무엇을 위해 숨을 쉬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주변의 기대와 연결된 수많은 끈들 사이에서, 온전히 나만의 생각을 하는 일은 마치 소음 속에서 작은 속삭임을 듣는 것처럼 어려웠습니다. '어디에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같았습니다. 그 자유를 향해 간다면, 결국은 내가 가장 덜 연결된 공간, 혹은 스스로 연결을 조절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건 한적하고 조용한 이미지를 가진 시골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너무 작아서 모두가 모두를 아는 곳보다, 너무 커서 누구도 누구를 모르는 곳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바쁘고 각자의 삶에 몰두해 있어서, 내가 잠시 흔들리거나 방향을 틀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런 곳. 그 익명성이, 오히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리적인 연이 거의 없는 곳. 내가 오래 살았던 곳보다는 나를 알지 않는 곳. 나를 찾는 사람이 없는 곳.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그 누구의 전화도, 메시지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곳. 과거의 흔적이 없어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곳.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낯설게 들리는 곳. 그곳에서라면 비로소 내가 그동안 짊어졌던 기대와 책임, 관계의 무게를 내려놓고 진정한 나를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선택한 현재의 모습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자유. 어쩌면 그것이 제가 정말 찾고 있는 곳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다시 질문을 곱씹게 됩니다. 나는 어디에서 살아야, 나로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