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사람

2025.05.25
profile_imagew0nder
<link-preview url="/s/coffee-chat-1-year-review" title="커피챗 1년 후기" target="_blank"> </link-preview> 멘토링을 자주 하는 편인데, 최근 들어 유독 여러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멘티들이 도움이 되었다고, 고맙다고 표현해줄 때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의구심과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나중에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런 겉도는 걱정들 밑바닥에는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걸까?',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정말 진심일까, 아니면 그저 예의상 하는 말일까?', '혹시 나는 능력 이상의 과분한 평가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더 깊은 자기 의심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런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혔고, 끝없는 자기 검열은 때로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한창 내면의 혼란을 겪던 시기에, 공교롭게도 한 멘토링 세션에서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 듯한 경험을 했다. 정확히 위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비슷한 종류의 따뜻한 감정이었다. 사이드 프로젝트 페이스메이커 프로그램인 '사이트킥' 베타를 완주한 분들과 커피챗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참여자 중 한 분이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고 싶어 했는데, 그분과 사업 초기의 어려움, 첫발을 내딛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막막함에 대해 한참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들을 기회가 생겼고, 문득 그 시선이야말로 더 객관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스스로를 평가할 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정보와 복잡한 감정까지 더해져 나름의 정확도가 있다고 믿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것이 오히려 내면의 편향과 얽혀 판단을 왜곡할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었다. 사실 나는 스스로를 늘 갈대처럼 연약하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처음 걷는 길에 대한 불안과 혼란, 크고 작은 아쉬움들 속에서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고 느껴왔다. 그런데 그날 대화 말미에, 멘티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w0nder님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단단한 마음을 가진 분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기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단단함이라니,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단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말도 다른 긍정적인 피드백들처럼 그저 예의상 하는 말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분과 나눈 대화 속에서 내가 겪은 어려움과 고민, 그리고 그것들을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분의 눈빛과 말투에서 느껴진 진정성은 단순한 예의나 격려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래서 그 말을 곱씹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단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늘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다그치며 살아왔는데, 타인의 시선을 통해 아주 잠시나마 나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소중한 경험들이 하나둘 쌓여, 조금씩이나마 나 자신을 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어쩌면 멘티가 나에게서 보았던 '단단함'이란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를 늘 '갈대'처럼 쉽게 흔들린다고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창업을 결심하고, 때때로 재취업의 유혹을 느끼면서도 '내 선택이 내 미래를 만든다'는 믿음 하나로 꾸준히 나아왔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수없이 의심하면서도 결국 나의 판단을 믿고 하나씩 무언가를 만들어왔고,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도 외부 상황을 탓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 애썼다. 이런 모습이 어쩌면 '내적 통제감'을 잃지 않으려는 나의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불안감에 휩싸이고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하던 일을 계속했다. 사업의 불확실성이 주는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고, 경제적인 압박감 속에서도 나름의 건강한 방식을 찾아 견뎌왔다. 이러한 과정들이 쌓여 '회복탄력성'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갖추게 된 것은 아닐까. 멘티는 어쩌면 "나는 약해, 매일 흔들려"라고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어"라는 나의 무의식적인 태도에서 진짜 단단함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불안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내가 '갈대 같다'고 느끼는 그 예민한 감각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야말로, 오히려 유연하면서도 쉽게 꺾이지 않는, 소리 없이 강한 '은근한 단단함'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