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1)

202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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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수많은 책들 사이를 걸으며 묻어두었던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개발자로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있던 의문이 있었다. 개발자가 나의 평생 업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책방이 나의 다음 업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항상 해왔다. 원래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책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책방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도서전에서 다시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가능할지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올해 초, 그 꿈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 하지만 곧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준비가 덜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각오가 부족했다. 막연한 로망과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결국 계획을 미루게 되었고, 그때의 경험은 미완의 시도로 남았다. 더 큰 고민은 내 자신에 대한 의문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싫어하지는 않는 애매한 성격. 이런 일이 정말 나와 맞는지에 대한 끝없는 의심들. 그리고 하루에 책 한 권 팔리면 잘 팔렸다고 여겨지는 독립서점의 현실을 생각하면, 최소 최저임금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도 무겁게 다가왔다. 과거에 브로드컬리에서 나온 책들을 읽으며 책방에 대한 현실을 깊이 생각했었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이런 직설적인 질문들은 내 안의 로맨틱한 환상을 깨뜨리는 동시에, 더 진솔한 고민으로 이끌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하려고 했지만, 막상 실제로 실현하려고 하니 주저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link-preview url="https://ridibooks.com/books/3330000007" title="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target="_blank" image="https://img.ridicdn.net/cover/3330000007/xxlarge?dpi=xxhdpi#1"> </link-preview> <link-preview url="https://ridibooks.com/books/3330000006" title="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target="_blank" image="https://img.ridicdn.net/cover/3330000006/xxlarge?dpi=xxhdpi#1"> </link-preview> 그래서 책방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고민했다. 지금 같은 온라인 시대에 자고 일어나면 책이 도착해 있는 세상에서, 오프라인 매장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한 쇼룸인가? 그렇다면 쇼룸의 의미는 또 무엇인가? 온라인의 편리함은 부정할 수 없다. 클릭 몇 번이면 원하는 책이 문 앞까지 배송되고, 알고리즘은 내 취향에 맞는 책들을 추천해준다. 리뷰와 평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효율성 면에서는 온라인을 따라갈 수 없다. 개발자로 이커머스와 전자책서점 도메인에서 일하면서 이런 오프라인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본질적 차이는 '큐레이션'에 있는 것 같았다. 온라인의 큐레이션은 철저히 데이터 기반이다. 구매 패턴, 검색 기록, 평점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런 책을 산 사람들이 함께 구매한 책', '당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들이 좋아한 책'을 추천한다. 정확하고 효율적이지만, 결국 내가 이미 가진 관심사의 연장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알고리즘이 만든 필터 버블 안에서 맴돌게 된다. 반면 오프라인 서점의 큐레이션은 완전히 다르다. 서점 주인이 직접 책을 읽고, 고민하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별한다. 때로는 잘 팔리지 않더라도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을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의외의 조합으로 함께 놓기도 한다. 이건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직관과 철학이 만들어내는 큐레이션이다. 그래서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예상치 못한 발견이 가능하다. 소설을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손에 든 요리책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하고, 서점 주인이 왜 이 두 책을 나란히 놓았는지 궁금해하다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연결고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예기치 않은 만남들은 알고리즘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만들어낼 수 없는 오프라인만의 고유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