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주의자의 선택

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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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로 10년 넘게 살아왔지만, 개발이 나와 맞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재미있지도 않고 힘들기만 했다. 그럼에도 계속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했던 일 중에는 생산성이 높고 잘하고 가성비가 좋았으니까. 개인 성향이기도 했지만, 서비스를 오픈하고 나면 24시간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잘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의 딜레마였다. 대학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순수한 학문적 탐구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과제에 맞춰 연구 주제를 정해야 했고, 논문을 위한 논문, 실적을 위한 실적을 만들어야 했다. 호기심보다는 생존이 우선이었다. 과제를 따야 인건비도 받고 연구비도 받는, 그런 삶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상상해봐도 실제와는 다르고,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그 일이 나와 맞는지 알 수 없다는 것. 내가 경험주의자라는 것조차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최근 두 개의 강의 제안을 받았다. 하나는 그동안 비정기적으로 해왔던 대학 강의가 정기적으로 바뀌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창업 경험을 나누는 멘토링 성격의 특강이다. 둘 다 시급이 높지 않지만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특히 모임 운영에 관심이 있는 요즘, 멘토링 모임을 진행하는 것은 좋은 실험이 될 것 같다. 예전에는 힘들게 하면서 성장하고 성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개발자 시절처럼 잘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도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로 계속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않고, 내 성향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일을 찾고 싶다. 대학 강의가 비정기에서 정기로 바뀌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창업 멘토링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내 경험을 전달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쌍방향의 과정이 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을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일에서 에너지를 얻고, 어떤 순간에 보람을 느끼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나답고 지속 가능한지 말이다.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