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2)
2025.07.13
w0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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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에서 돌아온 뒤, 다시 현실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책방을 꿈꾸며 가장 먼저 부딪힌 질문은 여전히 같았다. '이걸로 정말 먹고 살 수 있을까?'
돈을 벌려고 책방을 하려는 건 아니다. 오래도록 좋아했던 책이라는 매체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생활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최저임금 수준은 넘어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독립서점 업계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하루에 책 한 권 팔리면 잘 팔린 날이다." 이 한 문장이 주는 묘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낭만과 한숨이 뒤섞인다. 책을 팔고 싶지만, 책만 팔아서는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책방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책 외의 수익 모델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어떤 방식이 나에게 맞고, 또 책방이라는 공간의 성격을 해치지 않으면서 함께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음료나 커피 판매였다. 책을 읽거나 고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한 잔의 커피를 곁들일 수 있는 공간. 그것만으로도 책방은 더 따뜻하고 머물고 싶은 곳이 된다. 많은 북카페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는 조합이기도 하다.
다음은 모임 공간으로의 활용이다.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작가와의 만남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시간 단위로 공간을 대여하거나 유료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장을 만드는 것. 나 스스로도 독서모임을 꾸준히 해왔기에, 이 부분은 실제로 운영 가능한 영역이라는 확신이 있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개인 오피스처럼 운영하는 방식이다. 조용한 공간이 필요한 프리랜서나 창작자에게 책방 일부를 작업 공간으로 제공하는 형태. 수익성과 커뮤니티성을 모두 고려한 모델이기도 하다.
물론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책을 파는 일'이다. 하지만 이 구조 속에서는 책만으로는 존속이 어렵다. 이상과 현실을 균형 있게 조율하는 일, 그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주제다.
또 하나 떠오른 가능성은 출판업이다. 사실 개발 관련 책을 이미 한 권 써본 경험이 있고, 지금도 또 다른 개발서를 작업 중이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편집자와 협업하고, 독자의 반응을 받아보면서 '책 만들기'의 전체 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개발서와 책방에서 다루고 싶은 책들은 결이 다르다. 독립출판, 인터뷰북, 비평서, 에세이... 기술서가 아닌 다른 분야의 출판은 또 어떤 경험일까. 이미 책 쓰기의 고됨은 알고 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사람에서 책을 고르는 사람으로,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싶다는 바람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요즘은 오프라인 책방보다 온라인에서 먼저 실험해보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한다. 공간을 열기 전에, 나의 취향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고민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서점 큐레이션 계정을 운영해보려 한다. 어떤 책을 왜 골랐는지, 내 방식의 큐레이션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작은 단위로 공유해보면서 반응도 살피고, 스스로도 감각을 쌓아가고 싶다.
더 나아가서는 온라인 플랫폼도 구상 중이다. 독서모임과 책방 지도를 엮은 형태, 혹은 독립서점들이 입점할 수 있는 소규모 온라인 도서 커머스. 읽은 책을 기록하거나 서점 주인의 큐레이션을 통해 책을 고르는 경험을 디지털에서도 이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핵심은 단순히 책을 파는 쇼핑몰이 아니라, '큐레이션을 기반으로 책을 소개하고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독립서점은 단지 도서 유통 채널이 아니라, 서점 주인의 취향과 관점이 살아 있는 문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도 이런 점을 반영해야 의미가 있다.
개발자로서의 경험이 여기서 도움이 될 것 같다. 기술적인 구현은 할 수 있으니, 이제 중요한 건 어떤 경험을 만들어낼 것인가의 문제다. 알고리즘이 아닌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큐레이션, 효율성보다는 발견의 즐거움을 우선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개발을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다고 해서 바로 사람들이 찾아주지는 않는다. 운영과 마케팅도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이미 큰 플랫폼들이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작고 새로운 서비스가 자리를 만들어가려면 정말 끈기 있게 운영해야 할 것이다. 힘든 길이겠지만 하나씩 쌓아 올려야 한다.
이 모든 계획은 아직 '시작 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신중하게,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초의 성급한 시도에서 배운 교훈이다.
우선은 온라인에서 작은 실험들을 시작해볼 예정이다. 큐레이션 계정 운영, 독서모임 연결, 그리고 가능하다면 작은 출판 프로젝트까지.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언젠가 오프라인 책방도 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열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판다는 건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를 제안하는 일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조금씩 현실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작은 시도를 하나씩 더해본다. 큐레이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어떤 책들을 어떤 이유로 추천하고 싶은지 기록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