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
며칠 전 기술사 자격증 설명회에 다녀왔다. AI 시대가 가속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전문 자격증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단순한 지식 보유를 넘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을 보여도,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영역이 바로 '책임'이다. 아무리 치열하게 공부하고 빠르게 일해도 기술 발전 속도 앞에서 인간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AI 도입이 늦어지거나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책임의 영역'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책임의 영역에서 일하는 것이야말로 70세를 넘어서도 이어질 기나긴 노동 생활을 지탱할 핵심 동력이라 여겼다. 이런 생각 끝에 기술사라는 전문 자격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개발자로 현업을 지키며 여러 도메인에서 쌓아온 실무 경험을 천천히 되돌아보았다. 기술사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이자, 그간의 노력을 생산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정착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완전히 새로운 길을 찾기보다 내가 가진 기반 위에 전문성의 기둥을 세우는 것이 목표에 보다 수월하게 다다를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로 보였다. 하지만 설명회에서 마주한 현실적인 장벽은 만만치 않았다. 기술사 시험은 단순히 업력이 많다고 합격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었다. 관련 기초 지식과 최신 동향을 바탕으로 10분 내에 1.5페이지 분량을 수기로 작성해야 하는 가혹한 과정이었다. 더욱이 총 54페이지를 하루 종일 써내려가야 한다. 수능 공부를 방불케 하는 1~2년의 집중적인 수험 생활은 물론이고, 모든 답안지를 손으로 직접 써내려가야 한다는 점이 평소 악필인 나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벽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지식을 아는 것을 넘어 채점관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갈하고 논리적인 답안을 작성하는 '필력'을 갖추는 일은 실무와는 또 다른 차원의 도전으로 여겨졌다. 하루에 세 개 이상의 전문 주제를 깊이 있고 완벽하게 습득하고 막힘없이 글로 옮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과연 내가 해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막상 뛰어들기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엔 아쉽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