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뽀
아는 분 소개로 잠깐 대화만 나눠달라고 해서 갔는데, 면접이었다. 그냥 개발자 면접인 줄 알았는데 개발 리드 면접이었고, 대표님이 직접 나와서 면접을 보셨다. 그리고는 바로 같이 일해보자고 하시더라. 사실 취업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올해 1년간 할 다른 도전들을 계획해놨고, 준비도 다 해놨었다. 그런데 대표님이 며칠간 계속 설득하시는 바람에 결국 출근하게 됐다. 하루아침에 직장인으로 돌아온 셈이다. 대표님은 기존에 하던 일은 출근하면서 마무리해도 된다고 하시며, 빠르게 와서 팀 매니징을 부탁한다고만 하셨다. 이렇게 빠른 결정들은 항상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대표님이 너무 간절해 보였다. 나는 창업을 하면서 이렇게 간절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러면서 지난 창업 기간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나는 얼마나 대표스러웠을까? 물론 목표가 이런 걸 바라고 창업한 건 아니지만, 나는 과연 얼마나 했을까? 사업에 대한 절실함, 팀에 대한 책임감, 비전을 향한 추진력. 그런 것들이 나에게도 있었을까? 그래서 이 대표님에게 궁금함이 생겼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나를 왜 필요로 하는지, 그 필요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올해 계획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외주 계약을 몇 개 맺은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바로 출근하게 됐다. 일단 기존에 진행하던 일은 빠르게 마무리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추가 계약 직전에 있던 것들은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 클라이언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들이 이해해줄지 조금 걱정도 됐다. 바리스타 학원도 다닐 준비를 하고, 기타 여러 가지를 준비해 놨는데, 다 취소됐다. 아쉽긴 하다. 특히 바리스타는 꽤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거라 마음 한편이 허전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만 남았다. 인생이 참 묘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한 건데, 막상 이렇게 되면 당황스럽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당황스러움이다. 그렇게 취뽀?를 하고 다시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지난 1년간 얼마나 사회와 IT, 스타트업씬과 멀어졌나 느껴졌다. 1년 만에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나도 바쁘게 살아왔다고, 제품도 많이 만들고, 코딩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저 멀리 나 몰래 가버리고 있었다. 기술 스택도 바뀌었고, 개발 방법도 많이 바뀌었고, 트렌드도 바뀌었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주제들도 달라져 있었다. 혼자 작은 프로젝트들을 하면서는 몰랐던 것들이, 조직 안에서 일하려니 한꺼번에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따라잡으려면 당분간 뛰어야 할 것 같다. 아니, 뜀박질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