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아이와(AIWA)는 기억나는데

AUG 23, 20264분

히로시마에 여행을 왔다. 숙소 근처에 파나소닉 건물이 있었다. 아내와 걷다가 간판을 보고 TV 광고에서 들었던 것처럼 파나소닉을 발음해봤다. 파나소닉. 몇 번 하다 보니 조금씩 발음이 달라졌다. 음을 붙이기도 하고 끝을 흘리기도 했다. 어느 쪽이 광고에서 듣던 소리에 가까운지 서로 해보다가 웃었다. 파나소닉을 여러 번 말하니 예전에 쓰던 물건들이 생각났다. 그중에 껌전지가 있었다. 중학생 때 파나소닉 껌전지가 유명했다. 길쭉하고 납작한 충전지였다. 어느 회사 것이 더 오래간다느니 성능이 좋다느니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던 때였다. 충전해둔 껌전지를 갈아 끼우면서 썼다. 껌전지에서 아이와 카세트 플레이어가 떠올랐다. 처음 가졌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아빠가 사주셨다. 영어 공부를 하라는 뜻이었다. 영어 테이프를 넣고 듣다가 어느 날 독서실에서 잃어버렸다. 그 무렵에는 독서실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도 물건을 잘 챙기는 아이는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바로 말을 못 했다. 며칠을 끌다가 엄마에게 카세트 플레이어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엄마가 다른 걸 하나 사줄까 하고 물었다. 그때 카세트 플레이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여러 제품을 검색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알아보는 일도 처음이었다. 제품 이름을 검색하고 사양을 읽었다. 모르는 말도 많았다. 학교에 전자기기를 잘 아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아는 것이 많았다. 어느 회사 제품이 괜찮은지, 모델마다 무엇이 다른지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 친구가 아이와를 추천했다. 아이와 이어폰에는 말랑한 실리콘 이어캡이 달려 있었다. 그전까지 쓰던 이어폰은 딱딱한 플라스틱이었다. 처음 아이와 이어폰을 귀에 넣었을 때 귀 안에 착 붙는 느낌이 들었다. 바깥 소리가 줄었다. 음악 소리는 가까워졌다. 이어폰 하나를 바꿨는데 듣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신기해서 몇 번이나 빼고 다시 끼워봤던 것 같다. 엄마에게 그걸 사달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와 카세트 플레이어가 생겼다. 내가 제품을 찾아보고 골라서 산 첫 물건이었다. 오래 가지고 다녔다. 처음 산 테이프는 머라이어 캐리였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Without You를 배웠고 그 노래를 계속 듣고 싶었다. 노래가 끝나면 되감았다.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적당한 곳에서 멈추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너무 많이 감으면 노래 앞부분까지 지나가서 다시 앞으로 조금 돌려야 했다. 서태지 솔로 1집도 샀다. 그걸 들으면서 기타와 드럼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록도 그때 들었다. 음악을 찾아 듣는 일이 조금씩 늘었다. 테이프도 하나씩 늘었다. 그 무렵 그 친구와 기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음악 이야기도 했다. 그 친구가 말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목소리와 말투가 기억난다. 얼굴도 기억난다. 이야기할 때 짓던 표정도 기억난다. 뭔가 설명할 때의 버릇도 몇 가지 남아 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히로시마에서 파나소닉 간판을 보고 나서 그 친구를 오랜만에 생각했다. 이름을 떠올려보려고 그 시절 같은 반 친구들을 차례로 생각해봤다. 성이라도 생각날까 싶었다. 나오지 않았다. 아이와라는 이름은 바로 떠올랐는데 그걸 알려준 친구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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