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지 못한 진심들

202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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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하는 유럽여행.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해외에서 공부하고 여행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동안 부모님이 내게 주신 그 모든 기회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 거리의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법을 알게 되었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았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마주치는 작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다가왔다. 이제는 내가 알게 된 이 모든 것들을, 내게 이런 기회를 주신 부모님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동안 받기만 했던 내가, 이번에는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돌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열심히 찾아간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박물관에서. 부모님의 반응은 내 기대와는 달랐다. 현지 음식을 시도해보시다가도 결국은 고개를 젓고, 나는 그걸 보면서 또 다시 내심 짜증이 났다. "괜찮으세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저 다른 식당을 찾아보자고만 했다. 내가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들려드리는 이 도시의 이야기들은 부모님께 그저 지루하고 낯선 것일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에어비앤비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현지 마트에서 간신히 찾은 김치와 함께. 부모님은 며칠 만에 제대로 된 한 끼를 먹는다며 좋아하셨지만,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라는 말 대신 "맛있게 드세요"라고만 했다. 오후에는 그냥 숙소 근처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기도 좋네"라고 하시는 부모님의 말씀이 내 귀에는 "이제 저런 건물은 다 똑같아"로 들렸다. 부모님은 이미 지치셨고, 나는 뭔가를 더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런 내 마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그저 벤치에 앉아 있었다. ##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주하는 순간들 이런 순간들은 비단 여행에서뿐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신입 사원이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싶지만 선배들의 반응이 걱정될 때도, 경험 많은 선배가 변화를 시도하고 싶지만 팀원들의 불편함이 예상될 때도. 서로 다른 부서와 협업하며 업무 방식의 차이로 고민할 때도, 친구들과 새로운 취미를 나누려다 어색해질 때도. "이런 방식은 어떨까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신입처럼.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라고 제안하고 싶지만 "지금 방식도 나쁘지 않네요"라고 돌려 말하는 선배처럼. 우리는 늘 이런 간극 속에서 살아간다. 매 순간이 조율이다. 회의에서 의견을 내는 것도, 팀 프로젝트의 방향을 정하는 것도, 심지어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도. 누군가는 늘 불만을 가지게 되고, 그냥 대충 타협하거나, 아니면 한 사람이 전부 양보하는 식으로 끝나기도 한다. ## 솔직함 앞에 선 우리들의 두려움 '함께 한다는 것'의 첫걸음은 어쩌면 솔직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솔직함 앞에서 우리는 자주 멈춰 선다. 회사에서는 "이 방식은 비효율적인 것 같아요"라는 말이 선배를 비난하는 것으로 들릴까 봐, 친구에게는 "너의 그런 행동이 불편해"라는 말이 우정을 깨트릴까 봐, 부모님께는 "이걸 정말 함께 보고 싶었어요"라는 말이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솔직해진다는 건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동안 쌓아온 안정적인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 상대방이 나를 다르게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 이후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 이런 감정들이 우리의 입을 막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영원히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눈치만 보다가는 결국 서로가 지쳐버린다는 것을. 때로는 그 불편한 솔직함이, 답답했던 관계에 새로운 숨통을 틔워줄 수도 있다는 것을. 완벽한 타이밍이나, 완벽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저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속도로, 조금씩 솔직해지기 위한 용기를 내어볼 수 있을 뿐이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어설프게. 어쩌면 '함께하기'란 그런 서로의 불완전한 솔직함을 기다려주고, 받아들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진실된 관계, 조금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