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있을까
인테리어라는 건 참 어렵다. 집을 고치려고 하면 공사 자체보다 사람에 대한 걱정이 먼저 생긴다. 공사하는 동안 자주 가서 확인해야 한다고 하고, 가능하면 돈은 나중에 주는 게 좋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내가 현장에 없으면 대충하지 않을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고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을까, 돈을 이미 받았으니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결국 신뢰의 문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테리어 업자들을 욕한다. 어떻게 돈을 받고 이렇게 대충 할 수 있느냐고,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되는 일을 왜 이렇게 했느냐고, 본인 집이라면 이렇게 했겠느냐고 말한다. 나 역시 인테리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는 정말 저 사람들과 다른가. 물론 안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일부다. 일부. 하지만 그 말을 잠시 빼고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 질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만든 결과물을 볼 때는 꽤 엄격하다. 돈을 받았으면 그만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허술한 부분이 보이면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걸 왜 이렇게 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무언가를 만들 때는 꽤 많은 이유를 가지고 스스로를 이해시킨다.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사람이 부족했으니까. 일정이 촉박했으니까. 다른 일이 더 중요했으니까. 고객이 요구사항을 계속 바꿨으니까. 회사에서 이 정도를 원했으니까. 어쩌면 모두 사실일 것이다.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만큼 결과물에 시간을 쏟을 수 없는 상황은 흔하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고, 모든 일에 내 능력의 최대치를 쏟아부으며 살 수도 없다. 게다가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너무 자연스럽다. 내가 왜 남 좋은 일을 해야 하지?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결국 더 많이 가져가는 건 대표나 주주 아닌가. 회사가 더 성장하고 매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 과실이 나에게 그대로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굳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더 써야 할까. 월급을 받는 만큼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이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내 삶을 전부 바칠 이유는 없다. 대표를 위해 희생할 필요도 없고, 회사가 잘되기 위해 내 삶의 중요한 것들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더 많은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받는 보상과 역할에 맞는 수준을 요구하고,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퇴근하는 것도 충분히 정당한 태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회사를 위해 더 희생하지 않는 것과, 내가 맡은 일을 대충 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내 시간을 더 주지 않을 수 있다. 야근하지 않을 수도 있고,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내 삶의 희생으로 해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내가 일하기로 한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낮은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이 차이가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내 시간을 더 주는 것은 회사에 대한 추가적인 헌신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내가 알고 있는 더 나은 방법을 굳이 외면하고,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좋아질 부분을 "월급만큼 했으니까"라는 이유로 그냥 넘기는 순간부터는 회사와의 관계를 넘어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월급이 적다고 해서 결과물까지 그만큼 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월급을 많이 받으니 더 많이 희생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월급은 회사와 내가 합의한 노동의 대가이고, 내가 만든 결과물은 그 노동의 결과로 남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분명 관계가 있지만, 내가 받은 돈이 결과물의 품질을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물론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에는 환경이 중요하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지, 사람이 있는지, 필요한 도구를 쓸 수 있는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달라진다. 계속해서 일정이 부족하고 자원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그러니 결과물의 품질을 오로지 개인의 의지나 성실함으로만 이야기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다만 그런 조건들이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있어도, 결과물 자체를 바꿔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부족해서 여기까지밖에 못 만들었다면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는 그 결과물이 충분히 좋은지 아닌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돈 받고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말로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까지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만든 것은 그대로 남는다. 회사가 얼마를 벌었는지와 별개로, 고객이 얼마나 만족했는지와 별개로, 내가 얼마를 받았는지와도 별개로 결과물은 남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만든 과정에서 내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도 결국 내 경험으로 남는다. 개인사업자라고 해서 무조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반대로 회사원이라고 해서 자기 것이 아니니 적당히 해도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 자기 사업인지 아닌지가 본질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만든 것을 다시 봤을 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가에 더 가까운 문제인 것 같다. 여기서 조금 불편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나는 남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있을까.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묻는 질문은 아니다. 상사가 만족하는지, 고객이 칭찬하는지, 시장에서 성공했는지를 묻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누군가 앞에 꺼내놓으면서 "나는 이 정도로 일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해도 괜찮은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내가 어디에서 타협했는지를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모를 수도 있다. 고객은 모를 수도 있고, 상사는 더더욱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부분은 조금만 더 다듬었으면 좋았다는 것도 알고, 이 부분은 사실 귀찮아서 넘어갔다는 것도 알고, 이 부분은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결과물에 대한 가장 엄격한 평가는 어쩌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꼭 회사에 대한 충성심일 필요도 없고, 더 많은 일을 하겠다는 약속일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내 일을 바라보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다. 회사에 내 시간을 더 주지 않더라도, 내가 일하기로 한 그 시간만큼은 내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 나는 그것과 회사에 헌신하는 것을 굳이 같은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결과물을 완벽하게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시간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내 삶도 중요하다. 회사가 요구하는 모든 일을 내 일처럼 끌어안고 살 필요도 없다.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과 자기 삶을 갈아 넣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한 것과 그냥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한 것은 다르다. 전자는 현실적인 판단이고, 후자는 나의 기준일 수 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다른 이유를 붙여 넘어갔다면, 적어도 그 사실만큼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결국 내가 할 일이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불편함을 그냥 넘기지 않고 무엇이 부족한지 들여다봐야 한다. 실력의 문제라면 배우고, 경험의 문제라면 더 부딪혀보고, 기준의 문제라면 더 좋은 결과물을 찾아봐야 한다. 잘한다고 생각해도 더 좋은 것이 없는지 찾아봐야 하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다면 왜 좋은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더 잘 만들면 된다. 인테리어 업자에게 "본인 집이라면 이렇게 했겠어요?"라고 묻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 서비스를 직접 쓴다면 이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이 디자인을 내 이름을 걸고 보여줘도 괜찮을까. 내가 이 시스템을 앞으로 몇 년 동안 직접 사용해야 한다면 지금처럼 만들었을까. 결국 직업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인테리어를 하든, 코드를 짜든, 디자인을 하든, 글을 쓰든, 제품을 만들든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무언가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보며 "어떻게 돈 받고 이렇게 하지?"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쯤 내 결과물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 내가 받은 만큼 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보다 못하고 있는가. 조금만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내가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정이나 월급이나 회사나 고객 같은 수많은 이유 뒤에 그냥 묻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마 나도 항상 남 부끄럽지 않게 일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 적당히 타협한 적이 있고, 귀찮아서 넘어간 적도 있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한 적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없도록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내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다시 봤을 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을 너무 빨리 다른 이유로 덮어버리지 않는 것 말이다. 모든 결과물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할 필요도 없다. 다만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에게 내놓으면서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제대로 한 결과물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족하다면 인정하고, 공부하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 잘 만들었다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찾아보면 된다. 어쩌면 장인정신이라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 헌신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만든 것을 남 앞에 내놓았을 때 남 부끄럽지 않은 것. 그리고 만약 부끄럽다면 그 사실을 그럴듯한 이유로 덮어버리지 않는 것. 결국 내가 만든 결과물에는 내가 일하는 방식과 내가 가진 기준이 어느 정도는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일을 보며 쉽게 실망하거나 화가 날 때면,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나는 남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있을까. 아마 매번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무엇이 부끄러운지는 알고 있어야겠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조금 더 잘하면 된다. 그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일을 잘한다는 것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