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좋아하지 않아도
<link-preview url="https://w0nder.land/s/bookstore-2" title="책방 (2)" target="_blank"> </link-preview> 책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책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작 나를 끄는 건 책방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풍경 쪽에 더 가깝다. 책장을 천천히 훑는 사람, 한참을 서서 책 한 권을 고르는 사람, 사지 않을 거면서도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 어떤 책방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거기에는 시간이 쌓이고 관계가 쌓이고 기억이 남는다. 그래서 좋은 책방을 떠올릴 때면 나는 책보다 먼저 그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책방을 꿈꾸는 이유도 결국 그 풍경 때문일 것이다. 나는 책을 파는 공간보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에 끌린다. 우연히 들렀다가 단골이 되는 사람도 있고,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그저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서 이어진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책방이 그냥 가게가 아니라 작은 공동체의 씨앗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도 못하고,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기운을 얻는 편도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오래 어울리고 나면 오히려 쉽게 지친다. 새로운 관계를 반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익숙한 쪽이 편하고, 사람에게서 가능성보다 복잡함을 먼저 보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책방을 하고 싶을까. 더 정확히는, 사람들의 만남이 일어나는 공간을 왜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책방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요즘 책은 어디서든 살 수 있다. 온라인 서점이 더 싸고 편하고, 전자책은 둘 자리조차 필요 없다. 그저 책을 판다는 기능만으로 동네 책방이 버텨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는 이제 어렵다. 그렇다면 책방은 무엇이어야 할까. 나는 결국 그것이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 말고는 접점이 없던 사람들이 느슨하게라도 이어지는 자리. 그런 역할은 앞으로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이다. 나는 로컬 커뮤니티의 힘을 믿는다. 온라인으로 수천 명과 이어지는 시대일수록, 얼굴을 알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관계는 더 귀해진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과 연결돼 있으면서,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쉽게 혼자가 된다. 어디에나 접속할 수 있지만 정작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느낌은 점점 흔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동네라는 단위, 같은 공간을 매일 스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앞으로 더 큰 무게를 가질 거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책방은 상점이라기보다 일종의 사회적 기반시설에 가깝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다시 멈춘다. 로컬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건 믿는다. 그런데 나는 정말 사람을 믿는가, 사람을 좋아하는가. 곰곰이 따져보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하기가 어렵다. 사람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마음은 쉽게 변하고 관계는 예상과 다른 쪽으로 흘러간다.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지고 멀던 사람이 가까워진다. 어떤 공동체도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 않는다. 누군가 새로 들어오고 누군가 떠나는 사이 분위기가 달라지고, 처음에 다 같이 품었던 이상도 현실 속에서 조금씩 모양을 바꾼다. 돌이켜보면 내가 힘들어하는 건 사람 자체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불확실성에 더 가깝다. 나는 반복되고 지속되는 것을 좋아한다. 내일도 같은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것들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몇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가게나 꾸준히 이어지는 모임, 매번 비슷한 시간에 찾아오는 얼굴들. 그런 것들은 세상이 아주 무질서하지는 않다는 작은 증거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공동체에 끌리는 것도 사람보다 그 지속성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는 본래 지속보다 변화에 가까운 것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늘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한 사람의 변화가 옆 사람에게 옮아가고, 그게 다시 전체의 공기를 바꾼다. 누가 떠나면서 공동체의 성격이 달라지기도 하고, 누가 들어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처음엔 같은 곳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다. 나는 가끔 인간 사회 전체가 거대한 삼체문제 같다고 느낀다. 천체가 둘일 때는 움직임이 비교적 단순하지만, 셋이 되어 서로 끌어당기기 시작하면 그 미래를 정확히 계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사람 사이도 다르지 않아서, 머릿수가 늘수록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공동체가 애초에 그린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건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공동체에 품었던 실망의 상당 부분도 여기서 왔다. 나는 좋은 공동체를 보면 그게 오래가기를, 그 분위기와 서로 아끼는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났고 관계는 변했고 공동체는 다른 얼굴이 되었다. 예전엔 그걸 실패라고 여겼다. 지금은 다르게 본다. 사람이 떠나고 모습이 바뀌는 건, 그 공동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뜻이다. 변하지 않는 공동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꿈꾸는 책방은 어떤 모습일까. 한때는 좋은 공간만 만들어두면 좋은 공동체도 알아서 자라날 거라고 믿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체는 설계할 수는 있어도 통제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공동체는 내가 그린 모습 그대로 머물러주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람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쪽이다.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을, 공기가 바뀌는 것을, 내가 만든 공간이 예상과 전혀 다른 쪽으로 자라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는 일.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에게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다. 사람의 불완전함을 견딜 수 있는가, 계속 변하는 공동체를 감당할 수 있는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들을 끌어안고도 문을 열어둘 수 있는가. 책방을 한다는 건 어쩌면 책을 파는 일이라기보다, 이 질문들에 천천히 답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로컬 커뮤니티의 힘을 믿는다. 다만 그것을 영원히 굳어 있는 구조라고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고, 좋은 시절은 지나가고, 어떤 관계는 끝난다. 그래도 누군가는 불을 켜두고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사람들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자리를 비워두어야 한다. 내가 책방에서 하고 싶은 일이 결국 그런 것 같다. 완벽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대신, 변해가는 사람들이 잠시 앉았다 갈 자리 하나를 내어두는 일. 그러다 보면 공동체에 대한 답을 얻기 전에, 사람과 변화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먼저 배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