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 명 개발자로 만들었다
회사에서 비개발자들이 직접 PR을 올리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 최근 마케터가 마케팅 트래킹 스크립트를 추가해달라고 했다. 예전이었으면 티켓을 만들고, 개발팀 백로그에 쌓이고, 우선순위에 밀리다가 2주 뒤에 반영됐을 일이다. 대신 같이 시간을 내서 Claude Code로 PR 올리는 방법을 알려줬다. 트래킹이 언제 어떻게 기록되는지 궁금해했을 때도 Claude Code로 직접 확인하는 법을 알려줬다. CS 담당자가 어드민에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Claude Code로 기능을 만들어 PR을 올렸고, 내가 확인하고 배포했다. 이게 되는 시대가 왔다. 과거에 외국어는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번역가가 있었고, 통역가가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그들 없이 외국어로 된 일을 처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일정 수준 하고, 제2외국어도 한다. 번역가와 통역가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더 전문적이고, 더 책임이 필요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번역가 없이도 영문 이메일을 쓰고, 해외 미팅을 하고, 외국어 문서를 읽으며 살아간다. 개발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마케터가 트래킹 코드를 직접 수정하고 PR을 올린다. 기획자가 기존 코드를 바탕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디자이너가 프론트 개발자 없이 UI를 직접 개발한다. CS 담당자가 어드민 기능을 직접 만든다. 그리고 이건 프론트엔드에서 시작해서, 언젠가 백엔드까지 침투하고, 인프라 영역도 프레임워크처럼 추상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문제는 이 흐름 앞에서 사람들이 선을 긋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비개발자가 먼저 선을 긋는다. "그건 개발자 일이잖아요." 마케터가 트래킹 코드를 직접 수정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개발팀에 티켓을 넣는다. 기획자가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는데도, 개발팀 일정을 기다린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다. 영어를 할 줄 아는데 모든 영문 이메일을 번역팀에 넘기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선을 지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느려지고 있는 것이다. 개발자도 선을 긋는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백엔드는 내 영역이 아니다"라고 한다. 백엔드 개발자는 "프론트는 프론트가 하면 된다"고 한다. AI가 경계를 허물어주고 있는데, 사람이 다시 경계를 세운다. 간단한 API 하나를 백엔드에 요청하고 기다리는 동안, Claude Code로 직접 만들면 30분이면 끝나는 일을 이틀을 기다린다. 역할을 나누고, 내 일이 아니라고 하고, 방어적으로 자기 영역을 지키는 태도. 이건 전문성을 지키는 게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모두가 개발하는 시대에 개발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번역가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개발자의 역할이 바뀐다. 코드를 직접 치는 사람에서, 코드가 안전하게 돌아가는 기반을 만드는 사람으로. 구체적으로는 이런 일이다. 사람들이 코드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한다. 템플릿, 가이드라인, CI/CD, 테스트 자동화. 누구나 PR을 올릴 수 있되, 잘못된 코드가 프로덕션에 나가지 않는 구조를 만든다. 올라온 PR을 검수하고 컨펌한다. 마케터가 올린 트래킹 코드가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지, CS 담당자가 만든 어드민 기능이 보안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 코드를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쓴 코드를 판단한다. 배포를 책임진다. 코드를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코드가 실제 사용자에게 나가는 순간의 책임은 여전히 개발자의 몫이다. 막히는 부분을 도와준다. 비개발자가 Claude Code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 구조적으로 복잡한 부분, 판단이 필요한 부분을 같이 풀어준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결과물을 책임지는 역할. 그게 앞으로의 개발자다. AX(Agent Experience)라는 말이 있다. AI 에이전트가 제품과 시스템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UX가 사람을 위한 경험 설계였다면, AX는 에이전트를 위한 경험 설계다. 마케터가 PR을 올릴 수 있었던 건 마케터가 코딩을 배워서가 아니다. Claude Code라는 에이전트가 우리 코드베이스를 잘 탐색하고 변경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구조, 명확한 컨벤션, 테스트. 에이전트가 잘 작동하는 환경이 곧 모두가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다. 선을 긋는 순간, 그 선 안에 갇힌다. AI는 경계를 허물고 있는데, 사람이 경계를 만들고 있다면 문제는 AI가 아니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