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모두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제품

APR 26, 20264분

『미니멀리스트 창업가』를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문 단어는 커뮤니티였다. 책의 핵심이 거기에 있다고 단언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여러 메시지 중에서 유독 그 한 지점이 내 안에서 오래 남았다. 제품이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하라는 관점.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 속에서 방향을 찾고, 그 관계 위에 제품을 쌓아 올리는 방식. 처음에는 이 접근이 다소 이상적으로 들렸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면 좋은 아이디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순서가 거꾸로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아이디어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이미 어딘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같은 관심사를 들여다보는 사람들. 그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책이 말하는 건 단지 "고객을 먼저 확보하라"는 마케팅 조언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내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먼저라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 관점이 특히 더 무겁게 다가오는 건 지금이 AI 시대이기 때문이다. AI는 많은 것을 평준화한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 글을 쓰는 일, 디자인을 만드는 일, 기능을 구현하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물론 이 평준화가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결과물의 표면에서는 차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비슷한 품질의 글, 비슷한 수준의 도구, 비슷한 모양의 제품이 매일같이 새로 나타난다. 이런 환경에서 무엇을 만드느냐 자체가 차별화 요소가 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누구나 비슷한 걸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반대로 말해 왜 그것을 굳이 너에게서 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날카로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답은 결국 사람에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그 사람이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그 안에 어떤 신뢰와 맥락이 쌓여 있는지. 이런 것들은 AI가 쉽게 복제하지 못한다. 관계는 자동화되지 않고, 신뢰는 학습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래서 커뮤니티가 다시 보인다. 단순히 마케팅 채널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출발점으로. 그리고 만든 것을 의미 있게 받아주는 장소로. 여기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론이 있다. 모두를 위한 제품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 아니, 정확히는 모두를 위한 제품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점점 의미를 잃어간다는 것에 가깝다. 모두를 위한 제품은 결국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된다. AI로 비슷한 제품이 매일 쏟아지는 환경에서, "넓고 일반적인 것"은 가장 빠르게 대체되는 자리다. 반대로 "내가 속한 커뮤니티가 정확히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커뮤니티 바깥에서 보면 좁아 보일지 몰라도, 안에서 보면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내가 그 커뮤니티의 일부일 때, 거기서 오가는 대화를 알고, 사람들이 어떤 농담에 웃고 어떤 불편함에 자주 부딪히는지 알 때, 그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은 외부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결을 갖는다. 그건 단순히 "타깃을 좁힌" 제품이 아니라, 그 안에서만 성립하는 제품이다. 책을 덮고 나서 가장 강하게 남은 생각은 이거였다.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기 전에, 내가 어떤 커뮤니티 안에 있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겠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일이, 어쩌면 지금 같은 시대에 가장 견고한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모두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 내가 속한 커뮤니티를 위한 제품. 이 한 줄이 책에서 내가 가장 오래 들고 갈 문장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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